平和公園に寄り添う追悼碑へ。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碑の特徴
平和公園の片隅にひっそりと佇む、韓国人追悼碑の存在感が心に残ります。
小さくて目立たない場所にあるため、訪れるのが難しいことが悲しいと感じました。
韓国人犠牲者を偲ぶために、ぜひ立ち寄ってほしい大切な場所です。
평화공원에서 원폭 박물관 가는 길목에, 화장실 옆에 조그맣게 자리한 추도비입니다. 1979년, 원폭에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리고자 일본단체에서 세웠다고 쓰여있었어요. 광복을 앞두고 스러져간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왔습니다. 부디 많은 관심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제가 방문했을 때는 태극기와 소주가 놓여있었어요.
즐거운 여행중, 5분정도 엄숙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선조들을 기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그 긴 인류의 역사 중 겨우 100년 뒤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안전하고 고민없이 여행을 즐길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할 일인지. 모든게 선조들의 희생덕이겠죠. 100년전의 당신들께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日本語とか、いろんな勉強を頑張った少女たちが、三菱の工場の事務の仕事をしていて犠牲になった。知るべき史実のひとつ。
政治的な思想は抜きにして、ここでは北朝鮮の国旗も掲げていい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した。
늦은 출발로 나가사키역에서 바로 원폭조선인희생자 위령비에 왔어요..너무 초라해서 두 손 모아 추도하며 눈물이 주르르...정종이랑 초코과자 올리고 추도한 후에 술 3회 뿌려 드리고...위령비에 올려져 있는 물통들 정리해 두었습니다...작년 11월에 군함도에서도 같은 의식을 했었는데요...(그때는 추도하고 군함도 향해 바다에 술을 올렸어요) 그때에 비해 오늘은 유달리 울컥울컥 뭔가 힘드네요...지금 맞은 편 하단에 걸터앉아 멍하고 있습니다.....
머난 타국에 끌려가서 힘들게 일하다가 피폭당해 돌아가신 분들이란걸 생각하니 참 안타까웠다. 피폭희생자분들이 돌아가시기전 극심한 갈증을 호소하셔서 그런지 생수가 많았다. 하늘에선 편안들하시길
평화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모 위령비가 있다는 글을 보고 평화공원을 한참 서성이다가 없길래 포기하면서 원폭 전시 박물관으로 가던 도중 구글 맵에 뜬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진짜 도대체 왜 이렇게 작고 인적 드문 곳에 있던가..바람땜에 쓰러진 태극기도 다시 세워두고 물병도 올려드린 후 절하고 갔다..억울하게 원폭으로 희생된 약 2만여명의 조선인들 편히 잠드소서..
재일교포들과 일본 시민단체가 세운 조선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입니다.원폭 자료관 맞은편(편의점 건너편 유료주차장 바로 옆 벤치 안쪽)에 한국정부와 민단이 2021년 세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으니 함께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글에 안떠서 같이 올려요 두번째 사진부터입니다) 피폭이 되면 굉장히 목이 마르다고 하니 물 한병 가져가시면 좋을 거 같아요
涙が止まらないですね。 みんな天国でお幸せに。
| 名前 |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碑 |
|---|---|
| ジャンル |
|
| 電話番号 |
095-829-1162 |
| 営業時間 |
[月火水木金土日] 24時間営業 |
| HP |
https://www.city.nagasaki.lg.jp/heiwa/3030000/3030200/p005172.html |
| 評価 |
4.8 |
| 住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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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辺のオススメ
1945년 8월9일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으로 조선인도 2만명정도 피해를 입었고 이중 약1만여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1만여명 가운데 약8천여명이 귀국했고 1967년 원폭피해자협회가 결성.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 생존자의 치료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위령비 건립을 주장. 일본인들의 모금운동에 돌입하여 약50만엔을 조성했고 1979년8월9일 폭심지 근처에 추도비를 세웠다. 비석 앞에는 많은 생수들이 놓여있었고 한국에서 직접 준비해오신분들도 많은 것 같았다. 다만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다. 원폭 자료관 건너편 구석에 한국계에서 독립적으로 제작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이곳이 한국(계)가 만든 한국인을 위로하는 위령비이다. 조선인희생자추도비는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주도로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 모금으로 만들어진 위령비이다.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는 생전 조선인 원폭 사망자가 1만명이라는것을 자료조사와 현장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린 인물이다. 오카 마사하루 목사와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속죄 하는 마음으로 이 추도비를 세웠다고 한다. 추도비에 조선인이라고 되어 있고 조총련계 인물들이 추모행사에 참여하면서 민단중심의 한국인들은 이 추도비와 거리를 뒀다. 남북 분단의 역사의 아픔이 이곳에서도 재현되고 있는것이다. 애초에 조선인이든 한국인이든 희생자분들은 똑같다. 추도에는 국경이 없다. 다만 정확한 사실은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길게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