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야코지마섬 방문시 꼭가야하는곳
沖縄にある複数の韓国人慰霊塔の一つ。
ルートが難しいですが、必ず立ち寄らなければなら場所(原文)오키나와에 있는 여러 한국인 위령탑 가운데 하나. 길 찾기가 어렵지만 꼭 들러야 하는 장소
韓国人なら必ず行ってください(原文)한국인이라면 꼭 가세요
小学校最年少と一緒に貴重な歴史です韓国でピーナッツキャラメル羊羹買って行くそれでも気楽に通っていてきた(原文)초등학교 막내와 함께한 소중한 역사 입니다한국에서 땅콩카라멜 양갱 사가지고 가니 그나마 마음 편하게 다녔왔어요
3.1節を迎えて行ったの胸が詰まってますね。
苦しみ、無念この世を去った方を追悼します。
(原文)3.1절을 맞이하여 찾아간 곳가슴이 먹먹해지네요.고통받으며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추모합니다.
韓国人なら必ず行ってみているところ。
次レンタルしていくと、狭い路地基づいしばらく上がらなければされるが入口に大理石で作られた個人墓地二つあり内側にさらに入ると、ゼオライト見られる。
韓国人たちが持ってきたような焼酎、ゴム靴を見ていると心の痛み。
(原文)한국인이라면 반드시 가봐야하는곳..차 렌트해서 가면 좁은 골목길 따라 한참 올라가야되는데입구에 대리석으로 만든 개인 묘지 두개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비석 보임..한국인들이 갖다놓은 듯한 소주, 고무신보고있으면 마음 아픔..
胸痛かっも奥まったところにあり、さらに気に障るが、沖縄必須コスおすすめ道別に作成されていない前面二つの石碑家のような場所の間上に上がれば20〜30 m以内に到着します。
前の家の形のゼオライトない。
(原文)가슴아팠어요 너무 후미진곳에 있어 더욱 속상 하지만 오키나와 필수코수추천가는길이 따로 만들어지지않아 앞쪽 두개의 비석집같은 곳 사이로 위로 올라가면 20~ 30 m 이내로 도착합니다.앞에있는 집모양 비석 아니에요.
리뷰보고 와봤는데 비석과 주조물을 볼 수 없었다. 찾기 힘들어서 그런가 아쉽.
戦争による悔しい死がもうあってはいけません。
無念亡くなった方々のご冥福を祈ります。
-------------------------------------------------- -------------------------------------------------- --------------ゼオライトの内容は、次のとおりである。
写真で判読が曖昧な文字がありそうで、現場で直接読んで録音してきたことをタイピングする。
この地で亡くなった兄姉の魂にこの島は、なぜ静かだろうかなぜ言おうとしない女性の悲しみを朝鮮半島の兄姉の話を割れて連行されたお兄さんたち灼熱のベト底で息を引き取ら沖縄この地で手足が引き裂かれて魂を踏みにじられた兄よ戦争が終わって時間が流れてもこの地で軍靴の音は途切れない。
奪われた土地の消えた町の女性の悲鳴は相変わらずして人々の心は枯れたまま兄よまだ供養も受けられず、石灰岩隙間に埋め込まれた骨の骨故郷仙山に戻ることもできない兄よ私たち沖縄の人々はまだ軍靴に踏みにじられたままの兄姉の魂に深曲がる。
日本軍性奴隷として踏みにじられたお姉さんたち徴用者として犠牲になった兄の方々の深頭を下げる。
やがて固く実たバルサム氏が出てお互い海を渡って花咲きを信じ兄姉よ君が経験来ら苦難を伝えながら地球上で戦争と軍隊を根絶ことこの地で亡くなった兄姉の魂に私たちは誓う。
日本はアジア太平洋戦争と沖縄戦当時、朝鮮半島で100万人以上と推定される人々を強制的に連行し、これらを日本軍の性奴隷に、戦争のための働き手として労役させた。
慶尚北道から沖縄に徴用者が連行されたのは、1944年6月頃これらの中に強靭創氏は慶良間諸島の阿嘉島にソジョンボク氏は宮古島に配置された。
沖縄の地上戦は1945年3月26日に開始された。
二人は、同胞の死を目撃したり、同胞が処刑されたり虐待を受ける入会を強要されたりもした。
私たちは、朝鮮半島と沖縄二ところ向き合っては同じ追悼碑を建立することを決定した。
そして不幸な過去を心に刻んで平和共生の決意の証にしようとする多くの参加者の助けを借りて、この雨を立てた。
2006年5月13日、韓国から来た強靭創氏ソジョンボクさんと一緒に除幕式を挙行した。
ゼオライトの部分 - 吟醸稔碑文時 - 安里エイコ翻訳 - ハドンギルアジア太平洋戦争沖縄戦血徴用朝鮮半島出身者だけのゼオライトの建設を推進する会(原文)전쟁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더이상 있어선 안됩니다.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진으로 판독이 애매한 글자가 있을 듯 하여 현장에서 직접 읽고 녹음해 온 것을 타이핑함.이 땅에서 돌아가신 오빠언니들의 영혼에이 섬은 왜 조용해졌을까왜 말하려 하지 않는가여자들의 슬픔을조선반도의 오빠 언니들의 얘기를갈라지고 끌려온 오빠들작열하는 뱃바닥에서 숨을 거두어오키나와 이 땅에서 수족이 찢겨지고영혼을 짓밟힌 오빠들이여전쟁이 끝나 시간이 흘렀어도이 땅에서 군화소리는 끊기지 않는다.빼앗긴 땅 사라진 마을 여자들의 비명은 여전하고사람들의 마음은 매말라버린 채오빠들이여아직 공양도 못 받고 석회암 틈에 파묻힌 뼈 뼈 뼈고향선산에 돌아갈 수도 없는오빠들이여우리 오키나와 사람들은아직도 군화에 짓밟힌 채의오빠 언니들의 영혼에깊이 머리를 숙인다.일본군 성노예로서 짓밟힌 언니들징용자로서 희생당한 오빠들께 깊이 머리를 숙인다.머지않아 굳게 열매진 봉선화씨가 터져서로 바다를 건너 꽃피기를 믿으며오빠 언니들이여 그대들이 겪어오신 고난을 전해가며지구상에서 전쟁과 군대를 뿌리뽑는 것을이 땅에서 돌아가신 오빠 언니들의 영혼에우리는 맹세한다.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오키나와 전쟁 당시 조선반도에서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강제 연행했으며 이들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혹은 전쟁을 위한 일꾼으로 노역시켰다.경상북도에서 오키나와로 징용자들이 끌려온 것은 1944년 6월경이들 중에 강인창씨는 게라마제도의 아카섬에 서정복씨는 미야코섬에 배치되었다.오키나와의 지상전은 1945년 3월 26일에 시작되었다. 두분은 동포들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동포들이 처형되거나 학대를 받는데 입회를 강요 당하기도 했다.우리들은 조선반도와 오키나와 두곳에 마주서는 동일한 추도비를 건립할 것을 결정했다.그리고 불행한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평화공생에 대한 결심의 증표로 삼고자 하는 많은 동참자들의 도움으로 이 비를 세웠다.2006년 5월 13일 한국에서 오신 강인창씨 서정복씨와 함께 제막식을 거행했다.비석조각 - 긴죠 미노루비문 시 - 아사토 에이코번역 - 하동길아시아태평양전쟁 오카나와전 피징발 조선반도출신자 한의 비석 건립을 추진하는 모임
방문전 꽃한송이 정도라도 가져가세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와 조상
징용된 조선인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동상이 있다.
이번 미야코지마섬 방문시 꼭가야하는곳
名前 |
恨之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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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ン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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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所 |
〒904-0325 沖縄県中頭郡読谷村597 Senaha,Yomitan-son, Nakagami-gun, Okinawa-ken 904-0325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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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価 |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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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여행중이었지만 잠시 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