いろんな文化があるんですね。
のどかで静かな港です。
すぐ近くに綺麗な公衆トイレもあり、のんびり過ごしたい時に最適な場所です。
敵艦見ユトノ警報ニ接シ、聯合艦隊ハ直ニ出動、之ヲ撃滅セントス、本日天気晴朗ナレドモ波高シ。
いろんな文化があるんですね。
春になるとここら辺の花ヒトツバタゴが綺麗に見える地域です。
先祖から受け継いだ小屋を修復しながら使っていて、家と小屋を別にして火災に対するリスク管理が作り出した独特の風景です。
やはり、国境の島であることを感じさせてくれる場所です。
自衛隊の最前線基地の海栗島が目とはなの先にあり、自衛隊の方も常にいます。
一見のどかな小屋群ですが、緊張感をひしひしと感じさせてくれる場所です。
やはり、国境の島であることを感じさせてくれる場所です。
自衛隊の最前線基地の海栗島が目とはなの先にあり、自衛隊の方も常にいます。
一見のどかな小屋群ですが、緊張感をひしひしと感じさせてくれる場所です。
김수종작가의 글을 대신 옮겨본다. 쓰시마 북쪽의 ‘와나우라(鰐浦)’로 갔다. 와니(鰐)는 일본어로 ‘악어’라는 뜻으로 와니우라는 악어포구라는 의미이다. 악어 이빨과 같은 바위섬이 바다 한가운데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그러나 사실 이곳의 와니는 백제인으로 일본에 유학을 전해준 왕인(王仁)박사의 일본식 발음이기도 하다. 왕인 박사가 처음 일본으로 갈 때 이곳을 거쳐 갔다고 전한다. 2007년에 건립된 ‘백제국 왕인 박사 현창비(百濟國 王人 博士 顯彰碑)’를 살펴보았다. 백제의 영암 출신 학자로 알려진 왕인 박사는 우리 역사에는 기록이 없는 인물로, 일본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이름이 적혀 내려오는 학자이다. 일본에 논어 10권과 천자문을 전했다고 한다. 일본어로는 ‘와니(王仁)’ ‘와니기시(わにきし, 和邇吉師)’라고 표기되어 있다. “백제에 현인이 있다면 일본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먼저 한 사람은 일본의 오진(應神)왕이었다. 이때 백제가 보낸 사람이 와니기시, 바로 왕인 박사이다. 그가 처음으로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달하였다’ 하여 왕인을 일본에서는 유교와 한자를 가르친 원조라고 한다.또 다른 기록에는 오진왕 15년(284), 백제왕이 일본에 아직기(阿直岐)라는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기는 경전에 능해 태자의 선생이 되었다. 이때 왕이 아직기에게 ‘그대와 같은 훌륭한 박사가 또 있는가?’ 묻자, 아직기는 ‘왕인이라는 뛰어난 이가 있다’라 대답했다. 이에 일본 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불러오게 했다. 드디어 16년 2월 왕인이 왔다. 태자는 왕인을 스승으로 삼아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유식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본 기록은 전후좌우가 조금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명확하지는 않다.다른 기록에는 백제 17대 아신왕 때 왕인은 일본 오진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왕인은 책 이외에도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 바로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와니우라는 포구가 커서 선박을 정박시키기엔 알맞지만 북쪽 포구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고 얕은 여울이 있어 조류가 제법 센 곳이다.[출처] 김수종 작가 일본 쓰시마를 둘러보다. 2017년 3월 고니시 마리아의 신사|작성자 김수종
名前 |
鰐浦小屋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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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ン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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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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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連サイト | |
評価 |
4.0 |
沢山小屋があって良い眺めでした❗是非みる価値ありますよ。